논어 제 1편 학이
1. 공자 왈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배우고 익힌 것이 기쁨이 되는 순간이 있었는가?
끝까지 해 본 게 별로 없다. 어떤 시험을 치르는 일에 있어서도 끝까지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 성취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나다. 배우고 익혀서 기쁨을 맛보는 날이 오도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계속 해 나가자.
3. 공자 왈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인한 이가 드물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을 떠올리며 찾고 있었다. 그러나 진작 떠올리고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말을 어떻게 하는가. 말을 교묘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얼굴빛을 포장할 때는 많지 않은가. 상대에게 나는 악의가 없다는 것을 굳이 어필하기 위해 미소를 짓기도 한다. 살다보면 가식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표정을 꾸미는 것은 스스로도 힘들고 서로가 불편해진다. 힘들고 불편함을 지닌 마음을 거스르며 진심으로 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정돈하고 맑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7. 자하 왈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하기를
마치 여색 좋아하듯이 하고,
부모를 섬길 때에는
자신의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길 때에는
자신의 몸을 다 바칠 수 있고,
벗과 사귈 때에는
언행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운 게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머리속에 넣는 것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따로 따로임을 나 자신의 모습에서부터 발견하게 된다. 배우고 머리만 커지는 교만한 상태는 아닌가. 배웠다고 할 수 없음이다. 배우는 이유는 '안다'의 상태의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다' '되어간다' '되었다'로 넘어가기 위함이 아닌가?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다.
15. 자공 왈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 왈
그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은 간혹 보았지만 가난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다. 부유하면서 교만한 이들를 보았지만 부유하면서 예의있는 이들은 무수히 보았다.
부유한 이들에게서 예의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고 배려가 좀 더 쉽고 그런 환경속에서 지내다 보면 그것이 몸에 베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물림되고.
불행하게 사는 이들은 대부분 책임회피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내 잘못이 아니야. 누구 때문이야. 나라 탓, 사회 탓, 계속.. 무언가 때문이야." 라고. 그래서 문제는 계속 해결되지 않고 그 불행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가난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상황을 내 책임으로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거기서부터 하나 하나 풀어나가면 분명 즐거움도 하나 하나 따라오리라 믿는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논어 1편학이 16장 中 공자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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