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열전의 두 번째 관중안자 열전의 마지막 이야기. 사마천이 좋아한 안영=안자. 그는 누구인가.
안자 열전 : 안영은 누구인가?
안평중 영 (晏平仲 嬰) 을 통칭하여 안자라 한다. 안자는 '내' 나라의 이유라는 땅 사람이다.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을 모시면서 근검절약하고 역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재상이 된 후에도 밥상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 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고, 첩에게는 비단 옷을 입히지 않았다.
군왕이 물으면 바른 말로 대답했고, 묻지 않을 때는 품행을 단정히 했다.
나라에 도가 바로 설 때는 군왕의 명령에 순종했지만 , 도가 무너질 때는 군왕의 명령이라도 가늠해 보고 시행해야 할 것만 따랐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영공, 장공, 경공 삼대에 걸쳐 제후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안영의 일화 1 : 월석보 이야기 :
월석보 :
父(아비 부) 는 '이버지'란 뜻일 때는 '부'라고 읽지만 남자를 높여 부르거나 신분이 낮은 늙은이를 지칭할 때는 '보'라 읽는다.
월석보는 현명했지만 어쩌다 죄를 진 탓에 남의 노복이 되었다. 안영이 외출했다가 월석보를 보자, 자기 수레의 왼쪽 말을 풀어서 속죄금으로 바친 뒤 그를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안영은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그대로 안 방에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에 월석보가 떠나려 하자 깜짝 놀란 안영은 의관을 갖추고 사과하며 말했다.
"제가 인정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대를 구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처럼 성급하게 떠나려는 것입니까?"
월석보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그 억울함을 참을 수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뜻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노복들 무리에 있을 때는 그들이 저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께서 저를 구해 준 것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일터니 저를 알아주는 知己 (지기)인 셈입니다. 그런 지기가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니 저는 오히려 노복들 가운데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영으 그를 상객으로 모셨다.
안영의 일화 2 : 마부의 아내 이야기
안영이 제나라재상으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안영이 외출하는데 마부의 아내가 문 틈으로 그 모습을 엿 보았다. 재상의 마부인 남편은 큼직한 차양을 받쳐 들고 네 필의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꽤 의기양양하고 흐뭇해 했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떠나가겠다고 했다. 남편이 그 연유를 묻자 아내가 말했다.
"안자라는 분은 키가 6척도 안 되건만 재상의 자리에 올라 제후국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사려가 깊어 보이고 늘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이나 되는 키에 남의 마부로 일하면서도 스스로 흡족해 하는 것 같더군요. 이것이 제가 떠나려는 까닭입니다."
그 후 마부는 자신을 절제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안영이 그 까닭을 묻자 마부는 사실대로 말했다. 이에 안 영은 그를 천거하여 대부로 삼았다.
안자지어 :
晏子之御 (안자지어) 는 '안자의 마부'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지위를 믿고 우쭐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관중이 쓴 [관자]라는 책의 목민/ 산고/ 승마 / 경중 / 구부/ 각 편과 안자가 쓴 [안자춘추]를 읽었는데, 그 내용이 아주 상세했다. 그 책을 본 후 그들의 행적을 알고 싶어 전기를 정리했다. 그들의 저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그들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만 기록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을 흔히 현인이라고 하나 공자는 소인이라고 평했다. 이는 그가 주나라 왕도가 쇠미했졌을 때 현명한 환공을 도와 왕도 정치를 도모하지 않고 단지 패자의 이름만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옛말에 "군주의 장점은 따르고 단점은 고쳐주는 것이야말로 상하가 친해지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관중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안영은 장공이 죽었을 때 그의 시신 앞에 엎드려 곡을 하고 예를 갖춘 다음 자리를 떴다. 이를 두고 그를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은 비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군주에게 간할 때는 군주의 안색에 조금도 구애하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영이 오늘 날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든 마부가 되어도 좋을만큼 그를 흠모한다.
사마천이 말했다. 관중과 안자 이야기는 유명하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그러면서 공자가 관중을 소인이라고 했던 이유를 왕에 대한 충정이 아니라 패자로써 이름 날리기만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이야기는 안자라는 인물의 됨됨이와 사마천의 안자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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