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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사기열전

노자의 가르침을 따른 장자와 형명학을 주장한 신자 신불해

by ibiliever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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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신자
 

장자
장자는 몽 땅 출신으로 이름은 주다. 그는 일직이 몽의 관리로 있었고, 양나라 혜황, 제나라 선황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는 학문이 깊어 막히는 것이 없었는데, 그의 사상의 뿌리는 노자의 가르침에 있었다. 10여만 자에 달하는 그의 저서는 대개 우화로 되어 있다. 그는 [어부] [도척] [거협] 편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학설을 밝혔다. 외루허(산 이름)와 항상자(사람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닌 허구다. 
 
그러나 빼어난 글로 세상 일과 사람의 정을 살피며 이를 통해 유가는 묵가를 공격했으니, 당시의 대학자들도 그 예봉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언사는 큰 바다처럼 거침 없고 다함이 없어 왕과 공, 대인들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초나라 위왕이 장자의 현명함을 듣고 사신을 보내 후한 예물로써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천금이면 거액이고, 재상이면 높은 자리입니다. 그대는 제사에 제물로 바치는 소를 보지 못했소? 몇 년 씩 기른 후 화려한 옷을 입혀 태묘에 바치지요. 그 때서야 새끼 돼지를 부러워한들 소용 없는 일이지요. 그대는 그만 돌아가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나는 더럽고 탁한 도랑에서 맘껏 놀며 즐거움을 맛볼지언정 군왕의 구속을 받고 싶지 않소. 나는 평생 벼슬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뜻대로 즐기며 살고 싶을 뿐이오."
 
 
 
 
 
신자

산불해는 경 땅 사람으로 원래는 정나라의 하급 관리였다. 법가의 학문을 배워 한 소후에게 유세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15년동아느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에 힘쓰고, 밖으로는 각국 제후들에 대응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한나라는 잘 다스려졌으며, 군사도 강해 아무도 침범하는 이가 없었다. 
 
그는 황제와 노자에 바탕을 두고 형명학을 주장했는데 두 편의 글을 써 신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형명학 : 한비자가 주장한 학문으로 일정의 법률학이나 행정학이라 볼 수 있다)

 

 

형명학 :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중국 전국 시대의 신불해 상앙 한비자 등이 제창한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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